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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트레이' - 비평의 글(이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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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설악백공미술관 17-06-22 11:25 1,964회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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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글- 이관훈(Project Space 사루비아다방 큐레이터)

‘E STRAY’. 기획자에 의하면 이 전시는 이 시대의 시스템에서 길을 잃은 작가들의 창작을 순수한 커뮤니티 무대 위로 올려놓고 공유하고 대화 나누며 의미를 찾는 데 있다고 한다. 이 계기는 오랫동안 지속한 권력 제도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태도가 아닌 부재한 빈 곳을 채워나가는 수평적 태도로서 작가들의 소소한 창작 의지를 보듬고 함께 나아가려는 순수성에 기인한다. 다른 한편, 개인 혹은 집단의 이기로 경쟁 시대가 되어버린 현재의 모순은 예술 창작의 근원적인 것에서 힘든 고통을 감내하며 운명적으로 창작의 욕망을 실현하려는 숭고의 태()와 역행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속성은 부재의 대안이 실천되고, 또 다른 대안으로서 실천하려는 움직임과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그러한 현실적인 문제를 몸소 겪은 작가이자 기획자는 이번 전시에 있어서 미학 혹은 전시의 개념을 구현하는 것보다 작가들의 창작 언어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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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생활을 체험하고 뒤늦게 그림공부를 시작한 곽한울은 그려내는 것보다 개인적인 삶을 통해 터득한 사유와 사색의 길이 앞선다. 숲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공원이나 야산 등을 산책하며 사회에서 고립된 자아를 발견하고, 이를 구현하고자 그 대상들을 몸 언어(회화)로 감각하고 상상하는 표면적 사유를 하게 된다. 이것은 대상을 재현하거나, 재현된 것을 부분 혹은 전체를 벗겨내어 작가가 설정한 ‘gray void’라는 사색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제스처이자 과정의 표현이다. 그러하기에 그가 추구하려는 공허는 자연이 지닌 본질적인 메타포이자 무형의 공간으로 존재하기에 작가에게 있어서는 아직 추상적인 관념이 아닐까.

김원진은 누구나 기억하고 망각할 수 있는 것에 창작 언어의 단서를 찾는다. 그는 지나간 기록물을 다시 읽는 현상에 따라 다르게 전환되는 것에 편견을 갖는다. 사사로운 행위지만, 없어진 줄 만 알았던 기록물이 뒤늦게 발견되고, 이후부터 그 기록들을 분쇄하거나 버리는 행위가 오랫동안 습관화되면서 창작의 본능으로 전환되었다. 작가에게 있어서 기억하고 망각되는 찰나의 장면이 매일 매일 자기의 일기처럼 몸에 축적되고 모호한 풍경의 단면으로 남아, 결과적으로 자기 집을 짓듯 레이어가 층층이 치밀하게 구축되어 있다.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익히 보고 상상하는 다른 차원의 내면 풍경으로 가져간다.

 

인도 바로다에서 활동하는 마헤시 발리가(Mahesh Baliga)는 자신이 겪는 도시 생활의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관계로 엮어진 다양한 경험을 내러티브로서 다채롭게 표현하는 작가다.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을 재현한 것이 아닌 사라진 형상을 다시 상상하고 그의 내재한 기억으로 다시 그 대상을 추론하는 과정을 거친다. 예측할 수 없는 미디엄으로서 케신의 활용과 함께 채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생각의 여정이 그림 속 안으로 파고들어 그림 속 영혼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그리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일체감을 도모하며, 바라보면 볼수록 시선을 집중시키는 환영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그 그림 속에는 사람 사는 세상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수많은 상상을 유발한다. 자기만의 자잘한 에피소드의 축적으로 형성되어 휴머니티가 강하게 묻어난다.

 

이지양이 지향하는 이분법적 언어는 가벼운 재치와 유머가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 오브제나 상황을 위아래 혹은 좌우로 병렬시켜놓은 상태가 너무 쉽고 평이하게 보여서 당혹감을 준다. 쉽게 읽히는 것이 오히려 역으로 질문을 양산한다. 책의 앞뒤 간지처럼, 그 사이, 간극의 차이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을 생각하게 한다. 사물의 대상은 작가가 사고하는 다양한 프레임의 방식에 따라 다른 의미로 작용하며, 보는 주체의 인식 지각에 따라 변동한다. 이러한 작용과 변동은 다양한 텍스트를 생산하거나 또 하나의 미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

 

전주연은 주어진 모든 대상을 느린 태도로 접근한다. 이미지 언어를 개념화시키지 않고 개념을 몸으로 개입시켜 다른 언어로 전환한다. 그는 삶의 영역에서 천천히 수많은 콘텐츠를 경험하고 조형적인 틀에 갇히지 않으며, 다양한 매체, 기법, 주제 등을 자유롭게 실험하고 즐기며 노는 태도로서 새로움 대한 상상력을 어떻게 발현시킬지 고민한다. 보이는 결과물들은 언어화되는 과정으로서 날 것같은 가변적인 움직임 자체로서의 명징함이 있다. 삶의 프레임에서 고유의 감성 언어를 지속해서 획득하고 자기 코드에 맞는 사유로 전환하며, 이제 자기만의 콘텐츠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누구나 예술가의 꿈을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예술가가 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절실함이 있어야 하고, 숭고함이 그의 영혼 속에 깃들어야 하고, 동기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이 서려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미술 사회에서 떠도는 소위 예술가들이라고 추앙받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의미들처럼 같은 성질일까. 아니면 작가들 스스로 예술가로 자인하거나 명명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예술가들이 능동적인 의지와 관계없이 제도에 편승하거나 권력에 이끌려 존재의 가치를 알게 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예술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대중들의 기호에 맞춰 자본의 흐름을 추종하는 사람들을 예우하는 것일까.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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